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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8 예배의 온전한 회복을 기대하며
e선교 2021-07-18 13:21:51 13

  기독교에서 예배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께 나를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진실이어야 하고 성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재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했던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생활이 비정상적이 되었고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예배까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비대면 예배”“현장예배등 기독교 신앙에서 없는 말들이 방역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로 인하여 만들어지고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배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성도와의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이 담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통이 이루어지는 수직적인 관계와 성도들과의 교제가 있는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회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도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집단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중요한 일이 예배라면 결국은 참된 예배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따라서 비대면 예배란 신앙적으로나 문자적으로 기독교 신앙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편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일 뿐입니다. 물론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통이고 관계회복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성전을 찾았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여기에서 공통점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의미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웠습니다. 자기가 잘한 것을 자랑하며 자기 의를 내세우는 일에 급급했습니다. 그의 예배는 실제로는 예배하는 겉모습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사람 세리는 자기 의로움을 부정했습니다. 나는 죄인이고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813절에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을 했던 세리는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고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바리새인은 예배의 성공자가 아니라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을 부르기는 했지만 오직 자기 존재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에 자신을 드러내고 세우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특별하게 여겼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특별한 존재로 구별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의식, 형식, 외식만을 중시하고 내용은 없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말이 적었습니다. 오로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가슴을 쳤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습니다. 세리는 하나님과 절대적인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라고 기도를 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예배에 대해서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바른 예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같은 공간에 모이지 못하고 영상으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예배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을 온전한 예배의 회복을 향해서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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